롱펠로 (미래를 신뢰하지 마라!)

  미래를 신뢰하지 마라. 죽은 과거는 묻어버려라.  그리고 살아있는 현재에 행동하라 Trust no Future, howe’er pleasant!  아무리 즐거워 보일지라도 미래를 신뢰하지 마라! Let the dead Past bury its dead!  죽은 과거는 죽은 자들이 묻게 하라! Act,— act in the living Present!  활동하라, 살아있는 현재에 활동하라! Heart within, and God o’erhead!  안에는 용기가 있고, 위에는 하나님이 계신다! Tell me not, in mournful numbers,    Life is but an empty dream! For the soul is dead that slumbers,    And things are not what they seem. Life is real! Life is earnest!    And the grave is not its goal; Dust thou art, to dust returnest,    Was not spoken of the soul. Not enjoyment, and not sorrow,    Is our destined end or way; But to act, that each to-morrow    Find us farther than to-day. Art is long, and Time is fleeting,    And our hearts, though stout and brave, Still, like muffled drums, are beating    Funeral marches to the grave. In the world’s broad field of battle,    In the bivouac ...

피맛골 (피마골, 피마길)

내비게이션에 서울의 동네 이름을 입력하다 보면 문득 거대한 사파리 한복판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예술의전당 뒷산에는 소가 누워 자고 있고, 봉천동과 사당동을 잇는 가파른 고갯길과 강서구 화곡동의 나지막한 동산에는 까치들이 날아다니며, 양천구 들판에는 곰이 뒹굴고 있다. 광화문 뒷골목에 이르면 뜬금없이 말(馬)들이 뛰어다닌다. 우면산, 까치고개와 까치산, 곰달래, 피맛골(피마골, 피마길). 이름만 들으면 영락없는 ‘동물의 왕국’이다. 하지만 이 동물들의 탈을 한 꺼풀만 살짝 벗겨내면, 그 속에서 튀어나오는 것은 인간의 엉뚱함과 짠내 나는 생존 투쟁, 그리고 정직한 자연이 버무려진 유쾌한 반전 드라마들이다. 지도의 동물들은 어떤 곳에서는 우리 옛말이 문자의 그물에 걸려들며 생긴 착시이고, 또 어떤 곳에서는 선조들이 마주했던 진짜 생태계의 목격담이다. 가장 먼저 나를 미소 짓게 만든 것은 양천구 신월동에 남아있는 ‘곰달래’라는 다정한 이름이다. 처음 이 이름을 들었을 때 내 머릿속엔 쑥과 달래를 먹으며 울부짖는 아기 곰의 슬픈 전설 같은 것이 자동으로 재생됐다. 하지만 지명학이라는 이성의 렌즈를 들이대자 곰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신라 시대 고대 한국어에서 ‘검’이나 ‘고마’는 동물이 아니라 ‘크고, 넓고, 신성하다’라는 뜻을 가진 최고급 수식어였다. 즉, 곰달래의 진짜 얼굴은 ‘크고 넓게 탁 트인 들판에 흐르는 정겨운 냇가’였다. 문자가 없던 시절 우리 선조들이 넓은 벌판을 보며 “와, 참 고운 곰(넓은) 들판이네” 하고 부르던 소리가 세월을 타고 흐르다 엉뚱하게 곰(Bear)의 이름표를 달게 된 것이다. 이러한 문자화의 착시는 서초구의 ‘우면산’과 봉천동에서 사당동으로 넘어가는 남부순환로의 ‘까치고개’에서도 똑같이 반복된다. 소 ‘우(牛)’ 자에 잠잘 ‘면(眠)’ 자를 쓰는 우면산은 흔히 ‘늙은 소가 배를 깔고 누워 잠을 자는 형상’이라 설명되지만, 이 역시 사후에 지어진 그럴듯한 뻥이다. 진짜 본질은 ‘우뫼’ 혹은 ‘윗뫼’라는 정직한 이름에 있었다. ...

배암골 (물이 처음 나오는 골짜기)

이전 편에서 나는 ‘뱅이사골’이라는 투박한 순우리말이 이무기 전설이라는 기이한 옷을 입고 ‘뱀사골’로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을 짚어보았다. 전설을 한 꺼풀 걷어내고 나니 문득 또 다른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왜 이 뱀사골이라는 이름은 서울 한복판에는 없고, 유독 경상도와 전라도 같은 남부 지방의 품에만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걸까. 왜 산세가 험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강원도나 제주의 지도 위에서는 그 흔적조차 찾기 힘들까. 결국 지명이란 인간이 땅에 발을 붙이고 비벼대며 살아온 흔적이다. 서울처럼 한강을 낀 넓은 평야 지대에는 ‘물이 처음 솟구쳐 나오는 깊고 긴 골짜기(아시사골)’가 잉태될 지형적 바탕이 없다. 반면 영남과 호남은 백두대간과 지리산, 덕유산 등 해발 1,000미터가 넘는 거대한 산맥들이 끝없이 몸을 뒤트는 곳이다. 그 험준한 산세 속에서 옛 민초들은 난리를 피해, 혹은 생계를 잇기 위해 더 깊은 골짜기 안쪽으로 기어 들어가 터를 잡아야만 했을 것이다. 그 벼랑 끝 같은 ‘산속 마을(뱅이)’과 고요한 ‘깊은 계곡(아시사골)’이 만나는 서글프고도 치열한 삶의 조건. 그것이 경상도와 전라도에 집중되어 있었기에, 뱅이사골이 뱀사골로 굳어지는 말의 풍경 또한 남부 지방의 고유한 정서로 자리 잡았으리라. 하지만 산이 깊다고 해서 사람들의 입모양까지 같아지지는 않는 모양이다. 강원도 역시 첩첩산중이지만 그곳엔 뱀사골이 없다. 강원도 사람들은 계곡을 부를 때 남부 지방처럼 단어를 눅진하게 축약하는 방식을 쓰지 않았다.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골’, ‘~짜기’, ‘~고개’라 툭툭 던지듯 부르는 편을 선호했다. 그렇기에 강원도의 구불구불한 골짜기는 ‘뱀사골’ 대신 담백하게 ‘뱀골’이나 ‘배암골’이 되었고, 뱀처럼 유려하게 흐르는 물줄기를 뜻하던 옛말 ‘뱀내’는 훗날 한자의 옷을 입고 지금의 ‘춘천(春川, 봄내)’이라는 시적인 이름을 낳기도 했다. 바다 너머 제주의 풍경은 한층 더 낯설고 이국적이다. 화산섬인 제주는 육지의 ‘골’ 대신 물이 흐르는 길을 ‘내’로, ...

뱀사골 (뱀사골에 뱀은 없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등등한 기세의 이무기나 바위틈을 기어 다니는 독사를 떠올리는 계곡이 있다. 바로 뱀사골이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스토리텔링은 승천을 앞둔 거대한 이무기가 고승의 묘책으로 독살당해 죽은 골짜기라는 전설이다. 관광지의 안내판이나 언론의 흥미성 기사들은 늘 이 뱀과 이무기 이야기를 앞세우며 "전해진다"라는 모호한 말로 본질을 흐려왔다. 그러나 기괴한 전설을 한 꺼풀만 걷어내고 지명학(어원학)의 렌즈로 들여다보면, 진짜 알맹이는 전혀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뱀사골에는 뱀(Snake)이 없다. 뱀사골은 한자 표기와 기록 과정에서 발생한 전형적인 '민간어원(False Etymology)'의 산물이다. 문자가 없던 시절 이 땅의 민초들이 부르던 정직한 순우리말이 오랜 세월 구전되며 발음이 축약되었고, 후대에 한자를 쓰던 지배층이 그 소리에 맞춰 엉뚱한 동물 '뱀(蛇)' 자를 끼워 넣으면서 괴이한 설화가 사후에 조작된 것이다. 학술적으로 가장 설득력 있는 원래의 어원은 '뱅이'와 '아시사골'의 결합이다. 먼 옛날부터 우리 땅이름에서 '뱅이'는 '사람이 정착해 살 만한 터나 산속 마을'을 뜻하는 고어였다. 여기에 '처음으로 물이 솟구쳐 나오는 깊은 골짜기'를 뜻하는 옛말 '아시사골'이 더해졌다. 즉, 두 말이 합쳐진 '뱅이사골'은 '산속 마을에서부터 맑은 물줄기가 처음 시작되는 깊고 긴 골짜기'라는 눈부시게 평범하고도 아름다운 뜻을 품고 있었다. 이 투박한 우리말이 입에서 입으로 흐르며 발음하기 편한 뱀사골로 굳어진 것이다. 이러한 지명의 왜곡은 비단 이곳만의 일이 아니다. 전국의 수많은 산과 계곡, 마을 이름이 이와 같은 '한자 끼워 맞추기'로 본래의 의미를 잃었다. 곡식을 심던 '피밭골'이 자극적인 '핏빛 계곡(피아골)'으로 둔갑...

녹는점 (성과가 없다고 불평하는 건)

열심히 하는데 성과가 없다고 불평하는 건 온도가 영하 4℃에서 영하 1℃까지 올라가는 동안 왜 얼음이 녹지 않느냐고 불평하는 것과 같다.   노력은 헛되지 않다.  얼음이 녹는 건 녹는점 0℃를 초과하는 순간에 일어난다.

일본어 (일본에는 「어」 발음이 없다.)

때문에 서울을 소우루, 떡볶이는 도포키 버스는 바스, 커피는 코히

진작에 (회사는 회사, 동료는 동료)

  “회사는 내가 아니고, 업무는 내 인생이 아니다.” “회사에선 보수와 복지만 긁고 정따윈 남기지 마라!”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 좋은 말들을 대체 학교에선 왜 진작에 안 가르쳐 준거야?

세줄소설 (트위터 세 줄짜리 소설)

 매일 아침 눈뜰 때마다 관자놀이가 무슨 드릴로 뚫는 것처럼 지끈거리길래 뇌에 심각한 문제라도 생긴 줄 알고 아메리카노 때려 붓고 두통약까지 입에 털어 넣었는데도 약발 1도 안 들어서 진지하게 유서 써야 하나 고민했거든? 근데 회사 정문 출입 카드 찍자마자 대가리 아픈 거 씻은 듯이 나음. 내 몸뚱아리 세포 새끼들이 월급 루팡 하려고 아침마다 단체로 사기극 벌이는 게 학계의 정설.

스래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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