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도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준비도 없이 이곳에 왔다가 연습 한 번 못 해보고 떠난다. 세상에 나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이 없다 해도, 내가 이 행성에서 가장 큰 바보라 해도, 여름에 다시 듣는 수업은 없다. 이 강의는 단 한 번뿐이니까. 어제와 꼭 같은 오늘은 없고, 어느 두 밤도 같은 방식으로 행복을 가르치지 않는다. 똑같은 눈빛으로, 똑같은 입맞춤으로 되풀이되는 순간은 없다. 어느 날, 누군가 무심코 당신의 이름을 부르면 마치 향기와 빛깔 가득한 장미 한 송이가 방 안으로 던져진 듯 가슴이 환해진다. 하지만 다음 날, 당신이 내 곁에 있는데도 나는 문득 시계를 바라본다. 장미라니? 그게 대체 무엇이었을까? 꽃이었을까, 아니면 돌이었을까. 왜 우리는 덧없이 스쳐 가는 하루를 쓸데없는 두려움과 슬픔으로 바라볼까. 하루는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오늘은 내일이면 이미 지나가 버린 날”이라고. 우리는 미소 짓고 입을 맞추며 별 아래에서 서로의 조화를 찾으려 한다. 같은 시간 속에 존재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물방울 두 개가 서로 닮았으면서도 다른 것처럼. 새해가 되면 하는 일이 있다. 심보르스카의 시 ‘두 번은 없다’를 소리 내어 읽는 것이다. 1월 1일에 읽는 이 시가 나로선 얼음 목욕처럼 정신을 나게 한다. 시를 읽고 나면 내가 ‘새로운 습관 만들기 프로젝트’라 명명한 것에 대해 생각한다. 15년이 된 이 습관 프로젝트의 흑역사는 책 세 권으로도 모자라니, 말을 말자. 하지만 정리와 관련된 책을 읽은 지 십수 년, 실패와 성공의 무한 반복 끝에 2019년, 나는 드디어 정리 정돈을 안착시켰다. 어릴 때 ‘게으르다’라는 말을 수없이 듣고 자라 타고난 귀차니스트라 생각했지만, 실은 내 안에 ‘정돈과 고요함을 갈구하는 자아’가 있다는 걸 ‘발견’하고 ‘계발’하게 된 것이다. 타고난 것은 아니지만 연습과 반복을 통해 얻게 된 습관이 많다. 16시간 단식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글을 쓰는 습관은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숱한 시행착오 끝에...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등등한 기세의 이무기나 바위틈을 기어 다니는 독사를 떠올리는 계곡이 있다. 바로 뱀사골이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스토리텔링은 승천을 앞둔 거대한 이무기가 고승의 묘책으로 독살당해 죽은 골짜기라는 전설이다. 관광지의 안내판이나 언론의 흥미성 기사들은 늘 이 뱀과 이무기 이야기를 앞세우며 "전해진다"라는 모호한 말로 본질을 흐려왔다. 그러나 기괴한 전설을 한 꺼풀만 걷어내고 지명학(어원학)의 렌즈로 들여다보면, 진짜 알맹이는 전혀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뱀사골에는 뱀(Snake)이 없다. 뱀사골은 한자 표기와 기록 과정에서 발생한 전형적인 '민간어원(False Etymology)'의 산물이다. 문자가 없던 시절 이 땅의 민초들이 부르던 정직한 순우리말이 오랜 세월 구전되며 발음이 축약되었고, 후대에 한자를 쓰던 지배층이 그 소리에 맞춰 엉뚱한 동물 '뱀(蛇)' 자를 끼워 넣으면서 괴이한 설화가 사후에 조작된 것이다. 학술적으로 가장 설득력 있는 원래의 어원은 '뱅이'와 '아시사골'의 결합이다. 먼 옛날부터 우리 땅이름에서 '뱅이'는 '사람이 정착해 살 만한 터나 산속 마을'을 뜻하는 고어였다. 여기에 '처음으로 물이 솟구쳐 나오는 깊은 골짜기'를 뜻하는 옛말 '아시사골'이 더해졌다. 즉, 두 말이 합쳐진 '뱅이사골'은 '산속 마을에서부터 맑은 물줄기가 처음 시작되는 깊고 긴 골짜기'라는 눈부시게 평범하고도 아름다운 뜻을 품고 있었다. 이 투박한 우리말이 입에서 입으로 흐르며 발음하기 편한 뱀사골로 굳어진 것이다. 이러한 지명의 왜곡은 비단 이곳만의 일이 아니다. 전국의 수많은 산과 계곡, 마을 이름이 이와 같은 '한자 끼워 맞추기'로 본래의 의미를 잃었다. 곡식을 심던 '피밭골'이 자극적인 '핏빛 계곡(피아골)'으로 둔갑...